-떠돌아다니며 적어두었던 쪽글과 사진들을 내버려두기 아쉬워 개인적 기록 차원에서 정리해두기로 하였다./ 2014-2018년의 쪽글 모음, 사진 iPhone4s, 6s 1.얼마나 좋을까요.아프지 않고도 아픔을 알 수 있다면고독하지 않고도 고독을 알 수 있다면겨울 오지 않고 봄을 알 수 있다면이별하지 않고 사랑을 알 수 있다면아프지 않고 알 수 있다면얼마나 좋을까요. 애석하게도나는 그리 빼어난 사람이 되지 못하여볼품없는 파도처럼 살고 있습니다. 부서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 없이 일어나 바위로 부딪히는 파도처럼,그저 부서지며 잠시 반짝 하고는 햇살 속으로 사라집니다.오직 그런 시간뿐이지요.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포함한 것이라고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떠난 것은 타인이 아닌, 나였다는 것조차도요, 어리석습니다. 14 년 늦가을 2.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도 고작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아주 작은 섬에 들어온 지 어느덧 열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덕분에 매일 아침 나무를 하는 수고를마다하지 않으며 오전 내 땀으로 젖어있습니다.타오르는 장작 앞에 앉아 직접 말린 국화로 차를우리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따뜻한 날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끝없는 파도 소리에 자기혐오와 우울감,연민에 빠져 술로 지샌 밤이 절반에 다다릅니다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나에게 있어 자기객관화와 자기혐오는 고작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그래도 마주 봐야지요. 이겨 내야지요. 약과 술에 의지하는 삶은 그만두어야지요. 14 년 초여름 iPhone4s 2014-2015 3.요즘 바다 너머 지평선을 자주 바라보곤 합니다. 떠날 때가 되었나봅니다. 어디로 떠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이상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요. 오토바이를 한대 사서 수리하는 법을 약간 배웠습니다. 계획이라고는 텐트를 실은 오토바이에 몸을 기대어 무작정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15 년 겨울 4. 나는 이제 시인이 되어야겠습니다.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시로 사는 시인이 되어야겠습니다.언제나 시가 있을 곳을 정해놓고나는 그곳으로 향할 뿐입니다.그저 영혼의 나침반으로, 그 나선으로. 15년 여름 5.무수한 숨 가쁨 지나 염원의 뱃 길에 올랐습니다. 배 안은 요란하고 밖은 매섭고나는 몇 시간 전에 마신 소주 탓에 머리가 아픕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꾸몄을까요. 두렵습니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포기해야 할까요? 두려움을 외면하고자 마신 술은 약간의 선 잠 후, 두통만 가져다줍니다.내 안의 두려움은 염원하던 여행길의 설렘 조차 집어삼켰습니다.자세한 것은 일단 도착한 후 생각해야겠습니다. 16년 여름 6.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습니다.페인트 공이 엎지른 청색 물감, 바다를 물들입니다. 어젯밤의 두려움도 이 낯선 하늘에 묻어버립니다.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찾고 행하는 것. 나는 나의 영혼의 나침반을 따르기로,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나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로써, 나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알던 고독과는 사뭇 다른 고독입니다. 가득 둘러싸인 채 겉도는 마음의 고독 같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에도 둘러싸여 있지 않은 순수의 고독입니다.'그 어느 곳에 있거나, 그의 내부에서 그대를 부들부들 떨게 하는 무엇인가가 들끓고 있는 청년들이여 아무도 그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이로움으로 알라! -릴케'실로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구절입니다. 너무나 긴 침묵이군요. 벌써 해가 져 갑니다. 16년 여름 7.아주 오래전 나는,멋지게 하늘을 가르는 새처럼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눈물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나도 그런 나를 실컷 비웃습니다. 혐오스런 하루가 마치 내 안에서커져가는 암덩이처럼 느껴집니다. 더 이상 나에게 타인의 삶을 적시거나 아프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가장 소중한 그것들로부터스스로 멀어지기를 자처했습니다.문득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의강렬한 문장이 생각나는군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2015년 어느 날 우도에서 9.최근 며칠 동안 나는행복에 소리치며 살았습니다.순수한 단독자로서의 그 존재와 그 자유,그 소외된 여로에 살고 있는 겁니다. 끝없이 펼쳐진 자유한 대지,그 위를 하늘 날 듯 달리는순수 욕구에 의한 순수의 행위,대지의 진동만큼이나 쿵쾅대는 나의 심장소리.그것을 부디 잊지 않길 바랍니다. 16년 7월 시베리아 10.붉은 형제들.여인 아그라나.소비에트 시절의 건물.현관문 사이로 새어나온 종소리. 무쇠로 된 열쇠.낡은 카펫, 어두운 전구.타일이 약간 떨어진 욕실.날카로운 초인종.토마토를 잔뜩 넣은 보르쉬. 각설탕 넣은 커피.붉게 물든 석양.밤공기. 형언할 수 없는 길 201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