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보낸 편지 친애하는 당신께 1page 저는 지금 해발 3,550미터에 위치한 하이 캠프의 로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침묵만이 흐르는 이곳은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고요함과 적막이 깃든 이 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묘한 고독감을 자아내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여기 홀로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는데, 나는 여전히 그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며칠 전 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그 사실을 더욱 실감케 했습니다. 가 마주한 죽음은 저와 같은 나이의 인도인 남자, 아마르였습니다. 그는 저처럼 가이드나 짐꾼 없이 홀로 등반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이틀 동안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그는 늘 자신을 강한 사람이라 여기며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발 2,800미터 즈음에서 저는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지만, 아마르는 무리한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날 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을 보며 그의 도전을 응원했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저는 그가 저 높은 봉우리에 자신의 영혼을 남긴 채,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겐지스 강과 화장터에서 생각했던 죽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생과 멸, 연기법, 윤회와 같은 불교 철학적 개념이 아닌, 마치 피보나치 수열의 나선처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끝없이 도전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선의 궤적을 따라 한없이 반복되는 듯한 시도 속에서, 우리는 삶의 끝에 다다라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무모한 도전 속에서 스러져 가는 것일까요?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우리가 남긴 사랑과 온기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다른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삶의 유한함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서로에게 남겨질 흔적이 아닐까요? 부디 그가 좋은 곳으로 떠났길 기도합니다. 2page 새벽 4시오늘은 가장 길고 힘든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컨디션을 조절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산병 약을 복용한 후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린 탓에 몸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따뜻한 물을 얻기 위해 서너 걸음 떨어진 맞은편의 카페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밤새 얼어 있던 몸을 녹일 수 있는, 장작을 피운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여행자 몇 명이 구석에 드러누워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짐꾼들은 "그만 내려가는 게 좋겠다"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레몬 생강차를 마시며 자신의 몸이 호전되기만을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미리 가져온 고산병 약을 몇 알 나눠주었습니다. 약을 받아들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 이들을 보며 안도감도 잠시 느꼈지만, 약통이 점점 비어가는 것을 보니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모순이 일렁였습니다. 나는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지켜야 했습니다. 스스로를 지켜낼 사람도, 도움을 줄 이도 없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외면하며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니까요. 나는 이런 나에게도 실망했고, 아마 당신도 이런 내 모습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선택한 길은 내 생존의 길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용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여정이 끝난 후에야 이 모든 선택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 걸음마다 숨이 가빠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배낭을 고쳐 메고,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얼어붙은 땅에 스틱을 깊이 찔러 넣고 잠시 멈춰 섰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수없이 빛나는 별들이 쏟아질 듯 흩어져 있었고, 저 멀리 앞서가던 여행자들의 불빛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 별과 인간의 영혼이 동일하기라도 하다는 듯, 새까만 하늘 위에 하얀 점들이 여기저기 물감처럼 찍혀 있었죠. 그 별들 중 하나는 아마 아마르의 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요한 우주의 캔버스 위에 번져 있는 별빛들이 밤하늘을 한없이 넓고 깊게 채우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산을 오르며 육체가 괴로울 때 '평소에 운동 좀 해둘 걸'이라는 후회와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지?'라는 자책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일찍 도착한 여행자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축하며 서로 포옹하는 모습, 일행과 셀피를 찍는 모습, 조용히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이들의 지각과 사유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연의 공명이 우리 모두를 거대하게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절로 생겼습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네요. 아침의 태양이 마르디 히말 산맥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를 때, 저는 Hayato Sumino의 'New Birth'를 들으며 이 경이로운 순간을 만끽하려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산맥의 초입부터 품었던 나의 초월적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르가 여기에 있었다면, 그도 이 순간을 기뻐하며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꿈꾸었을까요? 어쨋든 저는 이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목적지에 다다랐다는 것은,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늘 그래왔으니까요.이번에도 어디로 떠날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 또한 나의 삶의 여정이겠죠.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은 이유 없이 태어나 나약하게 살다 우연히 죽는 것일지라도, 내게는 지나온 추억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됩니다. 그 추억들이 이제는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지만, 이 히말라야의 자연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이 산맥의 일부가 되어, 저와 함께 이 고요한 시간을 지켜주리라 믿어요. 이 아름다운 순간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의 소식도 들려주세요.따뜻한 마음을 담아, 안녕히. ---**글쓰기 연습을 하고자 23년 11월의 네팔 일기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뚜렷한 수신자가 없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전달한다는 것이 왠지 마음이 편안하고 설레는 일처럼 느껴졌거든요. 혼자 몰래 하는 글쓰기 연습, 히말라야에서 보낸 편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