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보낸 편지 친애하는 당신께, 잘 지내고 있나요?무작정 가방을 메고 집을 떠나온 지도 벌써 스무 날이 지났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포카라에 도착했어요. 이곳은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따뜻한 안식처와 같은 곳이에요.푸른빛으로 물든 페와 호수는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산과 하늘을 품고 있습니다. 낮에는 햇살이 은은하게 물결 위를 비추어, 작은 물고기들과 바닥의 자갈까지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호수를 둘러싼 숲은 물에 그림자를 드리워, 호수의 빛을 더욱 깊고 짙게 만들어 줍니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물 위에서 천천히 흔들리는 나룻배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은 그 위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일상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호수를 둘러싼 카페와 음식점에서는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흘러나오고, 그곳의 사람들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조용히 책을 읽고 있죠. 해질 무렵에는 붉은 노을이 호수 위에 내려앉아 물결을 황금빛으로 물들입니다. 이 순간 호수는 하루의 색을 담아내며, 보는 이에게 고요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페와 호수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조용하고 편안한 풍경 속에서, 잠시나마 이곳의 일부가 되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지난번에는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편지를 보낸 후에 조금 후회했어요. 혹시 내 우울이 당신에게 전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어두운 날씨에 그저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빗방울이 묻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오늘은 조금 더 밝은 이야기로 채워볼까 합니다. 어제는 혼자 거리를 거닐다가 멋져 보이는 펍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셨습니다. 나무로 된 간판과 어두운 조명이 매력적인 그곳은 소박하지만 정감 가는 분위기였죠. 네팔 맥주는 그럭저럭 마실 만 했고,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캐나다인 가족과 프랑스인 커플은 만년설로 덮인 높은 산을 오를 생각에 잔뜩 상기되어 자신들의 계획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들의 눈은 마치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들처럼 반짝였어요. 그들의 설렘이 나에게도 스며드는 것 같았죠. 이 마을은 히말라야를 오르기 전, 현지 정보를 얻거나 필요한 행정 처리를 위해 반드시 들르는 곳이라고 해요. 오를 사람들, 이미 올라갔다 온 사람들 틈에 숨어, 저는 ‘등산은 나와 어울리지 않지. 난 충분히 휴식만 취하다가 내일이나 모레쯤 이 마을을 떠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계획은, 그저 이렇게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를 쉬게 하는 것, 그게 전부였어요.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올려다본 저 커다란 산맥을 보며 생각했어요. 저 산을 오르면 나의 번뇌가 사라질까? 저곳에선 후회와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마치 거대한 존재 앞에 서게 되면, 사소한 걱정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혹시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치 산이 나에게 손짓하며 도전해 보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그 다음 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순식간에 마을 곳곳을 뒤지며 등산화와 장비를 빌리고, 행정처리를 마쳤어요. 근처까지 데려다줄 픽업 차량도 구했죠. 우연히 빈 자리가 나서 바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이 마치 운명처럼, 계획한 것처럼 막힘없이 진행되었어요.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현지인들은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한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라서,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마치 잊고 있었던 나의 행운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달까요. 오늘은 편지가 짧습니다. 내일 히말라야로 떠나는 날이라 정신이 없거든요. 준비물이 다 갖추어졌는지 몇 번이고 체크하고, 아직 완전한 용기가 생기지 않은 내 마음도 달래며 분주하게 보내고 있어요. 대신 사진 몇 장 동봉해서 보내요. 이곳에 도착하기 전 들렀던 곳들이에요. 사진 속 풍경들이, 당신의 하루에 잠시나마 따스한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길 바랄게요. 심심할 때 한 번 꺼내보셔요.다음에는 조금 더 긴 편지로, 또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다시 편지를 쓸게요. 이번에는 답장을 주시면 좋겠어요. 당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서요.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