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보낸 편지 친애하는 당신께. 오랜만에 편지를 합니다.요즘 기분은 어떠신지,웃음 지을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정하고 세심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는 가장 무례하고 못됐거든요. 어쩔 때는 깡패고 사기꾼이고사이비 교주가 되어 사방으로 괴롭히기 일쑤입니다. ..제 모든 것을 분해하여 관찰하고재조립하는 과정이라 해두면 어떨까요?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요. 요즘 악몽에 시달리는 횟수가퍽 늘었습니다. 식은땀을 훔치며 동트기 전의어둡고 푸른 방 안을 둘러보면가끔은 한겨울 같기도,깊은 물속 같기도 합니다.오늘도 그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덕분에 이른 새벽부터산사 끝자락에 올라 작은 물길이 지나는 소리,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들으며꽃도 보고, 풀 자락도 보고,나무 둥지를 바쁘게 오가는어미 새의 날갯짓도 보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산책 후 집에 돌아와샤워를 하다 문득 거울 속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니그 속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더 이상 빛나지 않는 눈동자,아슬히 붙어있는 겉가죽.저는 스스로를 비웃으며나지막이 말했습니다.'참으로 볼 품 없네.' 열정과 사랑과 순수와 믿음이 온몸에 가득 넘쳐 흐르던 순간들은 거울에 맺혀 맥없이 흐릅니다. 아.. 아..! 나의 소중한 젊음. 젊음은 그저 죽음을 앞둔 하나의 순서.사라질 뿌연 환상. 자명한 것은 그 안의 아픔뿐.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상처와 아픔이많아진다는 거잖아요? 이제부터 잘 숨겨야 해요.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거 잖아요.적응하거나 무딘 게 아니라태연한 척, 안아픈 척 사는거. 그런거. 우린 좋은 어른이 될꺼에요. 그렇죠? 직장을 그만둔 후 가만히 누워천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부분의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늦은 밤 편의점에 가서소주를 사 올 때도 있죠.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는 않아요.아마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안과고통에 가득 차 무엇 하나에집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범한 실수나 망쳤던 일,상처를 주고받은 일,여러 가지 후회와 생각들은커튼 사이 작은 틈을 비집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저 햇살처럼제 부끄러움을 비춥니다. 나는 늘 낮고 작은 음성으로 욕망을 말하고 커다란 함성으로 실수를 외치기를 반복합니다. 그럴때마다 최선을 다해 커튼을 여미고선 괜찮다. 괜찮다.나는 아직 괜찮다.몰래 속삭입니다. 내 머릿 속 사공의 노는 늘 낭떠러지를 향해 있고 저항 없는 낙하를 반복합니다. 쿵 하고 떨어져 펑 하고 터지며 잔해들은 사실과 다르게,퍽 괴상한 모양으로 뭉쳤다 부서집니다. 그게 다에요. 사실.. 최근 몇 년간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막연히 잘 살고 싶다 말했지만 막상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왜 사는지,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모든 기준이 모호했던것 같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삶, 그저 Well Being-Well Dying을 말하면서도 나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대로 생각이 멈춰버린 듯 해요. 생각은 발 끝(걷기)에서 나온다고 산책 중독자 니체는 말했던가요. 자신에게 유일한 정신적 휴식은 정처없이 거리를 걷는것이라 했던 모리세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로울 만큼 걸으며 스스로 고통을 주어서라도 잠시나마 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습니다. 벌써 해가 지는군요.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당신 소식도 전해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럼,